[현장특별강연]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김정섭 박사

2022-10-18


2022 지속가능한 사회적 농업 포럼@청송에 참가한 사회적 농장들이 갖고 있는 ‘사회적 농업의 정의, 사회적 농장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듣고,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김정섭박사님이 포럼 현장에서 들려준 이야기를 정리해 공유합니다.  



[현장특별강연]

사회적 농업은 복지일까? 농업일까?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김정섭 박사

 


많은 사회적 농장들이 정체성에 대해 고민한다.
우리가 방향을 잘 잡기 위해서 나침반을 쓰는데 나침반의 바늘은 항상 북쪽을 가리킨다. 바늘 끝이 전혀 미동하지 않는 나침반은 고장 난 나침반이다. 정상적인 경우라면 바늘은 항상 떨린다. 같은 의미로 사회적 농업에 대해 아주 정확한 방향을 알려줄 순 없겠지만 그건 나침반이 떨리는 것이지 방향을 잃고 팽글팽글 도는 게 아니다.
‘사회적 농업은 이런 거야’라고 정리하고 생각을 멈추는 순간 고민하지 않게 되고, 그 순간 많은 문제가 생긴다.

 

“내가 하는 게 사회적 농업 맞아?” “사회적 농업과 치유농업이 뭐가 다르지?” 고민한다는 것은 우리가 아주 건강하다는 증거다.
믿어버리는 순간 위험해진다. 연구자는 글로 사회적 농업의 정의를 내리고 정리를 해야 한다. 정의 내리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글을 쓰고, 마음속으로는 ‘이게 정답은 아니다’라고 이야기 한다. 학술적, 이론적 의미를 담아서 연구원이 쓴 글은 농림축산식품부 공무원과 다른 연구자들이 보기 때문이다.
일상에서의 사회적 농업 설명은 굳이 그럴 필요 없다. 현장에서 알아듣기 쉽게 이야기할 수 있으면 된다.
사회적 농장으로서의 정체성과 사회적 농업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된다면 하고 있는 일을 잘 보여주면 된다. 사회적 농업이란 이름 없이도 농장에서 해왔던 활동들을 보여주면서 이런 걸 ‘사회적 농업이라고 합디다’라고 설명하면 된다. 이론적 설명은 크게 필요 없다.
홍성 행복농장은 2014년부터 이 일을 해 왔지만 사회적 농업이라고 말한 적이 없다. 2017년까지 많은 정신장애인들이 농장을 왔다 갔다 했지만 사회적 농업이란 말을 쓰지 않았다. 나중에 연구자가 찾아가서 사회적 농업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정체성이란 그런 것이다. 대부분 본인의 이름을 본인 스스로 짓지 않았듯 정체성은 내가 정한 것이 아니라 남들이 정하는 것이다.
사회적 농업, 사회적 농장의 정체성에 대해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사회적 농업이란 말을 쓰지 않더라도 내가 하는 활동을 어떻게 잘 설명할 수 있을까? 우리 농장에 오는 사람들에게 내가 하는 일이 정말 도움이 되나? 생각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하는 중요한 고민이다.

 

말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하지만 현실에서 쉽지는 않다.
사람들이 자꾸 와서 건드린다. 사회적 농업은 처음부터 편 가르기에 희생양이 될 운명을 갖고 있었다.
예전에는 “사회적 농업은 농업입니까? 복지입니까?”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농업하는 곳에 가서 사회적 농업을 설명하면 “에이~ 그건 복지네!”라고 하고, 복지하는 쪽에 가서 ‘이건 복지다’라고 설명하면 “에이~ 그건 복지가 아니야!”라는 말을 들었다. 사회적 농업은 이런 거라고 얘기한들 해답이 되지 않는다. 말로 정체성을 설명하는 것은 해답이 될 수 없다. 상대에 따라 유연하게 얘기할 줄 알아야 한다.
개념적으로 이해하기 어렵지만, 때로는 그것이 강점이 될 수 있다. 쉬운 예로 사회적 농업은 45분 노동, 15분 휴식 규칙을 따르지 않아도 된다. 거기에 사회적 농업은 의미와 매력이 있다.


사회적 농업은 자립을 시키는 게 아니라 같이 사는 것이다.
우리가 자립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자립이란 말을 쓰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우리 중에서 1도 자립하지 못한 사람이 없고, 100% 자립한 사람도 없다. 그래서 함께 살아가는 실천들이 필요하다. 사회적 농업 실천은 거들어 주는 것이다. 1년 함께 농사짓고 “이제 나가서 자립해!”가 아니라 “같이 잘살자, 어려운거 있으면 이야기 해, 도와줄게”라고 할 줄 알아야 한다. 이것이 사회적 농업 실천이 갖는 의미다.

 

'사회란 두 사람 이상이 관계를 맺고 사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인간관계가 있는 것, 사회적 농업은 관계를 맺는 농업이다. 관계를 맺으면 도움을 주고받으며 살아가게 된다. 관계가 생겨나고 또 하나의 사회가 탄생하게 되는 것, 그것이 사회적 농업이 추구하는 방향성이다. 현재 장애인과 함께하는 농장을 보더라도 70% 이상이 이전에는 장애인들을 만나지 않았던 분들이었다. 하지만 사회적 농업을 실천하면서 지역사회에 살고 있는 장애인들의 이름을 알고, 함께하는 일들을 만들어낸다. 이들에게 곁을 내주고, 함께하는 것이 사회적 농업을 실천의 의미다. 그래서 너무 멀리 있는 참여자들과 함께하기에는 어렵다.
사회적 농업은 관계를 만들어내는 것이지, 한 번 와서 프로그램만 하고 가는 농촌휴양관광이 아니다.